[비욘드포스트 조동석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를 필두로 세계 주요국이 너도나도 자국 산업보호 및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의 효율성과 민간의 자발성을 중시하던 흐름이 후퇴하고 정부의 명시적인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부상과 자원의 무기화를 도모하는 러시아 등 권위주의 세력의 도전에 맞설 필요성에다, 이미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 경제안보라는 명목으로 주요 전략산업에 대한 각국의 산업정책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제시한 바이든 정부의 대외경제전략 청사진이 관심을 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그것이다. 그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의 ‘산업정책의 부활과 새로운 도전’ 보고서에서다.
산업정책의 득과 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과거 산업화 시기 각종 보호주의적 산업정책으로 도약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중상주의나 보호주의가 기승부린 바 있지만, 정작 영국을 위시해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자유무역이었다.
또 19세기 미국의 부상에 대해 고관세 등 보호주의 조처에 주목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자금지원을 위한 은행법이나 경쟁 강화를 위한 반독점법과 같은 제도적 정비가 주효했다는 분석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현대 중국의 급속한 성장 역시 산업정책보다는 개방과 민간 혁신에 의존하는 면이 강하며, 오히려 그간 중국의 반도체나 조선, 항공업 육성 등의 야심찬 산업정책 목표들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평가했다.
급변한 글로벌 환경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공급망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진 데다 디지털 혁명과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도전이 가세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내 일자리 보호와 중산층 지원의 필요성도 크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점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정책은 나름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산업정책의 가세로 인해 경제관리의 전통적인 지평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IMF의 이코노미스트 루치어 아가월(Ruchir Agarwal)이 제안한 ‘성장전략의 트릴레마’(Growth Stategy Trilemm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먼저 정책결정가의 입장에서 이른바 ‘성장 강박증’과 ‘불안 공포’로 인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산업정책, 특히 이른바 ‘국가대표선수’(National Champions: 대표기업 혹은 대표산업)의 육성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경제관리 혹은 성장전략의 성장 대 안정이라는 전통적 상충관계(딜레마)는 이제 새로운 트릴레마로 진화한다. 즉, 지속가능한 성장과 금융-재정 안정, 또 국가대표 선수의 육성이라는 성장전략의 세 가지 축 모두 동시 성립은 불가능하며, 두 가지만 선택하고 어느 한 가지는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가능할까?
문제는 산업정책 위주의 접근이 일종의 경제적 군비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이 제시한 바이든 정부의 대외경제전략 청사진이 관심을 끈다.
이른바 ‘중산층을 위한 대외정책’으로 명명된 이 전략은 무엇보다 미국의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통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로자 미국인’의 입장에서 대외정책과 국가안보에 접근하는 것이다.
자체 공급역량 강화가 우선이며, 이를 기반으로 기존 관세인하 위주의 무역협정을 대신할 동맹 위주의 새로운 국제경제 파트너십이 뒤따른다.
설리번은 핵심 축으로 현대 미국산업전략의 글로벌 버전인 ‘현대 산업혁신전략’(modern industrial and innovation strategy)을 제안한다. 이 때 전략부문에 대한 공공투자가 전면에 나선다. 공급망 탄력성, 일자리 창출, 노동과 환경 보호 등 인프라나 공공재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를 시장 자율에만 맡기기보다 정부 주도의 공공투자로 대응하고자는 것이다.
장 연구위원은 “21세기 미국 산업정책의 요체가 2차대전 이후의 부흥기와 같은 미국의 리더십 회복, 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새판짜기라는 점에서 자칫 냉전기처럼 양진영의 지정(경)학적 분절화나 1차대전 전야의 이합집산과 같은 혼란으로 귀착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대내 성장동력의 쇠락과 美中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며 새로운 생존방식을 모색하는 우리로서도 절대 좌시할 수 없는 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