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나보다 대여섯은 많아 보이는 점잖은 중년 신사입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동시에 스타트업 몇 개를 준비 중이며 그 중 한두 개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대화를 통해 그는 소위 ‘명문’이라고 부르는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그 학교 인맥을 통해 살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왔고 현재도 그 인맥을 활용 중이며 앞으로도 그런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 앉아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쌓은 지식과 경험 그에 따른 통찰은 자신만의 지혜로 굳어져 귀담아들을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날 그가 한 얘기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게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주제가 등장해도 마지막에는 4차산업혁명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대화를 끝마칠 즈음에 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4차산업혁명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은 가지만 솔직히 나는 그 정확한 실체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열기가 좀 식었지만 2~3년 전까지만 해도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은 경제와 미래를 얘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안 쓰이는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떠들썩했습니다. 2016년 출판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 계기가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 클라우스 슈밥은 ‘다보스포럼’에 참가해 미래에는 물리적 기술과 디지털, 생물학 기술이 끊임없이 융합되고 조화를 이루는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될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했습니다.
선진 주요 나라들은 그의 말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고 시큰둥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포럼에 참가했던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돌아와 그 말을 퍼뜨린 게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4차산업혁명을 제목으로 단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고 대통령 직속 기구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는 뻔합니다. 경제계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이 말을 입에 올리지 않고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똑똑한 선각자들은 4차산업혁명의 정의 내리는 것을 꺼려했고 실체가 없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뜬구름 잡는 얘기라며 이 말이 만병통치 아이디어가 아니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한번 붙은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내가 만난 그 분도 당시의 충격을 지금까지 강하게 간직하고 계속 그 말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4차산업혁명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AI는 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해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일자리와 사람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 봐서 AI야 말로 진짜 4차산업혁명의 단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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