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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뮤지엄, 사랑과 공감의 메시지 전하는 특별전 개막

김신 기자 | 입력 : 2025-08-10 14:35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이 9일 특별한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We, Such Fragile Beings)》을 개막했다.

이 전시는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에서 출발한다. ‘창백한 푸른점’이라 불린 이 사진 속 지구는 먼지알갱이처럼 작아 보였다.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끊임없는 갈등을 벌이며 살아가는가?” 포도뮤지엄은 이 질문을 통해 우리 모두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싹트는 이해와 연민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시는 의도적으로 충격적이고 불편한 현실부터 보여준다. ‘망각의 신전’이라 이름한 첫 전시실은 폭력과 증오의 해악을 잊고 과오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다. 장엄함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네 여성 작가들이 던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입부에는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를 석권한 모나 하툼(Mona Hatoum), 50년간 권력 언어를 해부해온 제니 홀저(Jenny Holzer)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자리했다. 이들의 작품은 증오와 분열에 매몰된 현대사회의 민낯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1.6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와 철근이 공중에 매달린 모나 하툼의 작품은 평온해 보이면서도 위태로운 압도감으로 다가온다.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1975년 발발한 레바논 내전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없게된 작가가 보여주는 붕괴 직전의 구조물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50년간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탐구해온 제니 홀저는 정치적 양극화가 거센 소셜미디어의 텍스트를 수집해 296개의 납과 구리판에 고고학 유물처럼 새겼다. 공격적이고 날선 언어를 순식간에 소비하며 무감각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라이자 루(Liza Lou)는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남아공의 줄루족 여성들과 함께 그들을 억압했던 철조망을 수백만 개의 비즈로 덮었다.

애나벨 다우(Annabel Daou)는 시민들과의 대화에서 수집한 일상적인 언어를 약 6미터 길이의 마이크로파이버에 수정액으로 써내려가며 분열된 세상에서도 인간만이 가진 공통분모를 되새긴다.

두 번째 전시실은 무형의 시간을 마치 인물화를 그리듯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존재로 다루며 시간에 대한 상대적이고 감각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수미 카나자와, 마르텐 바스, 사라 제, 이완 네 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방식과 감각으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시간이 가진 고유한 성격과 표정을 섬세하게 발견하며,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관람객들은 이들의 작업을 통해 시간의 상대성과 그 앞에서 무력한 인간 존재의 공통된 조건을 발견하게 된다.

수미 카나자와(Sumi Kanazawa)는 연필로 뒤덮은 신문 수백장을 커튼처럼 이어 붙여 시간의 반복을 물질로 축적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마르텐 바스(Maarten Baas)는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에서 시계바늘을 끊임없이 조립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작은 단위에 갇혀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라 제 Sleepers
사라 제 Sleepers

사라 제(Sarah Sze)의 작품에서는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꿈속에서 펼쳐지는 무의식의 풍경은 놀랍도록 공통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완(Lee Wan)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째깍거리는 560개 시계로 각자 다르게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를 시각화했다.

포도뮤지엄은 매 전시마다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기획한 테마공간을 설치해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첫 번째 테마공간 <유리 코스모스>는 다양한 폭력의 생존자들이 숨을 불어넣어 만든 유리에 관람객의 숨을 불어넣으면 수백 개 유리 전구가 연쇄적으로 빛을 발하는 키네틱 작업이다. 개인의 고통과 집단 치유의 관계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몰입형 설치 작품이다. LED 디스플레이와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1977년 보이저 호의 ‘골든 레코드’가 울려 퍼진다. 55개 언어로 울려 퍼지는 인류의 인사말을 들으며 관람객들은 거울 속에서 무한 복제되어 점점 작아지는 우주 속 작은 존재로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 테마공간들은 김희영 총괄디렉터가 기획하고 조경건축가 수무, 유리공예가 양유완, 프로그래머 신재영, 안록수, 박지연, 엔에이유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해 완성했다.

마지막 3전시실의 테마는 ‘기억의 거울’이다.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서로를 비추고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공간이다. 관람객은 거울을 통해 기억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상호연결성을 체험한다.

3전시실은 포도뮤지엄에서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을 소개하는 ‘ACA in PODO’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부지현(Boo Jihyun), 김한영(Kim Han young), 송동(Song Dong), 쇼 시부야(Sho Shibuya) 등 한·중·일 4인의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지현의 폐집어등이 연출하는 적막한 바다, 김한영이 반복된 붓질로 축적한 시간의 무게, 송동이 베이징 철거 현장에서 구해낸 낡은 문들의 상호 의존, 쇼 시부야가 매일의 뉴스 위에 덮어낸 하늘까지, 모두 작은 일상의 반복이 지닌 위로와 회복의 힘을 보여준다. 네 작가는 “부서진 세상에도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것은 바로 우리의 소소한 시선 속에 숨어 있다”는 명료한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 작품은 야외 정원에 설치된 포도뮤지엄의 소장품 로버트 몽고메리 (Robert Montgomery)의 LED 조형물이다. 2022년 루브르 박물관 튈르리 정원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은 단 한 문장으로 이번 전시의 여정을 관통한다. “사랑은 어두움을 소멸시키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다.”

망각의 신전, 시간의 초상, 기억의 창을 거쳐 관람객들이 도달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고한 해답이다.

포도뮤지엄 김희영 총괄디렉터는 “가끔씩 우주의 스케일을 떠올려 본다는 것은 생각의 분모를 키우는 일이고,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초월하는 힘을 준다”라며, “이번 전시는 처음에는 다소 무겁고 파격적인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작가들의 눈에서 아름다움과 희망적인 메세지를 발견하고, 폭력에서 치유로의 변화 과정을 체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포도뮤지엄은 전시를 보러온 관객들의 경험 개선을 위해 뮤지엄 주변 환경을 재정비했다. 앞뜰과 뒷뜰에 잔디 마당과 야외 공연장을 조성하면서 포도호텔까지 이어지는 호젓한 산책로가 생겼다. 야외 정원에는 로버트 몽고메리, 우고 론디노네, 김홍석의 조각 작품이 설치되었고 소나무 숲에는 덴마크의 3인조 아티스트 수퍼플렉스의 그네가 설치될 예정이다.

포도뮤지엄은 2021년 개관 후 ‘혐오’, ‘소수자’, ‘노화’ 등 다소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쉽게 풀어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로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고있다. ‘제주도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뮤지엄’으로 손꼽히며 한라산 중산간 일대의 문화 지형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는 2025년 8월 9일부터 2026년 8월 8일까지 1년간 계속된다.

김신 비욘드포스트 기자 news@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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