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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범죄, 합의 아닌 통제… 법원은 관계 형성 전 과정까지 본다

김민혁 기자 | 입력 : 2025-10-22 11:50

사진=강천규 변호사
사진=강천규 변호사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온라인 DM과 게임,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선물과 칭찬, 비밀 공유로 심리적 의존을 만들고 결국 성적 행위로 끌어가는 전형적 ‘그루밍’ 사건이 잇따른다. 겉으로는 피해자가 분명히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로 오인되기 쉽지만, 법원은 관계 형성의 경위와 권력 불균형을 핵심 심리 포인트로 삼는다. 최근 실무 흐름은 물리력보다 심리적 지배가 어떻게 축적됐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성년자가 얽힌 사건에선 유인·권유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된다. 경제적 지원이나 선물, 진로 멘토링을 내세웠더라도 성적 목적의 접근과 관계 고착이 드러나면 책임이 무겁다. 13세 미만 아동은 동의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다. 촬영과 전송이 결합되면 불법 촬영뿐만 아니라 성착취물 제작·배포·소지까지 해당되어 형량이 크게 가중된다. 성인 피해자 사건이라도 교사, 코치, 상급자 등 지위를 이용하거나 통신매체를 통한 반복적 성적 접근은 모두 중대한 범죄로 다뤄진다. 법원은 범행의 계획성, 반복성, 피해자에게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엄중하게 판단한다.

양형에서 중점은 세 가지다. 첫째, 관계의 설계 과정이다. 호칭과 선물, 비밀 대화로 신뢰를 축적했는지, 가스라이팅·고립을 통해 거절 능력을 약화시켰는지, 심야 호출·숙박 제안 등으로 성인 공간으로 유인했는지를 본다. 둘째, 권력 격차다. 평가·진로·경제를 매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피해자가 구조적으로 종속된 사정이 있었는지가 판단 포인트다. 셋째, 디지털 흔적이다. 단발성 물증보다 장기간 누적된 메시지 흐름, 송금·택시 이용·위치 기록, 플랫폼 접속 이력과 같은 맥락 증명력이 높게 평가된다. “피해자가 먼저 호감을 보였다”는 주장은 사전에 형성된 의존 관계나 위계적 정황이 확인되면 설득력을 잃는다.

피해자 보호는 형사 절차와 가사 절차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다. 수사 단계에서는 진술보조인 동석, 비공개 조사와 재판, 2차 피해 차단이 가능하며, 긴급한 경우에는 접근금지나 주거 분리 같은 임시조치가 신속히 발동된다. 특히 미성년 피해가 있는 가정에서는 친권 제한이나 상실 등 추가 조치가 연동되기도 한다. 피해 회복 단계에서는 치료·상담 비용 등 실손해뿐만 아니라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으며, 불법 영상이 유통된 경우에는 삭제·차단과 추가 손해배상 청구가 병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피해자는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최대한 보호받으면서, 피해 회복과 권리 구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실무 대응의 분기점은 초기 증거의 연속성이다. 관계 초반의 호칭 변화, 선물·금전 지원, 약속과 지시, 늦은 시각 호출, 장소 제안, 거절 후 압박 메시지 등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신빙성이 높아진다. 캡처 이미지는 원본 파일·백업과 함께 보관하고, 휴대전화 포렌식에 대비해 임의로 기록을 삭제하거나 계정 설정을 바꾸는 행동은 피한다. 진술은 감정 표현보다 행동–시간–장소–말의 순서로 기록할수록 설득력이 커진다. 반대로 합의서 강요, 사과문 작성 요구, 연락 차단을 피하려는 우회 계정 운용 등은 가해자에게 불리한 사정으로 작용한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강천규 대표변호사는 “그루밍은 폭력의 ‘순간’보다 길들임의 ‘시간’이 본질입니다. 법원은 그 시간을 해체해 권력관계를 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기부터 메시지 흐름과 경제·이동 기록을 끊김 없이 확보하고, 보호명령·비공개 절차를 병행하는 이중 트랙 전략이 가장 현실적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루밍성범죄는 ‘합의’의 언어로 위장되지만, 실상은 의존과 통제를 활용한 구조적 범죄다. 관계 형성의 흔적을 시간의 선으로 복원해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실을 법정 언어로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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