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트럼프 상호관세 근거인 IEEPA 권한은 의회에 있어"...9명 중 '위법 6', '합법 3'으로 나뉘어
[비욘드포스트 이성구 전문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미 연방 대법원이 20일(현지시간) 판결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사진=게티 이미지
대법원은 이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9명 가운데 '위법' 6명, '합법' 3명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이는 지난 1, 2심의 위법 판결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상호관세' 등 일부 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전 세계의 대미 수출품에 1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다른 관세 부과 절차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근거해 부과한 국가별 관세가 이날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관세 부과 수단을 꺼내 들면서 대미 통상 환경에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 판결 뒤 백악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이날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관세가 3일후 발효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가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regulate)할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규제의 일종인 관세 부과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근거로 삼은 IEEPA에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워싱턴DC에 소재한 연방대법원. 사진=EPA, 연합뉴스
IEEPA는 1977년 발효된 것으로 외국에서의 상황이 미국 국가 안보나 외교정책, 미국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험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경제 거래를 통제할 여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권한 중 하나가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수입을 규제할 권한에는 '관세'도 포함된다고 주장해왔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관세 부과를 위해 IEEPA를 발동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관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며 IEEPA가 대통령에게 주는 수입 규제 권한에 관세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며 "관세에 외교적 영향이 있다고 해서 의회가 모호한 표현이나 신중한 제한 없이 관세 권한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따라서 대통령은 그 권한(관세 부과권)에 대한 자신의 보기 드문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명확하게 의회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대통령은 수량, 기간, 범위의 제한이 없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엄청난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가 이런 권한을 행사하려면 분명한 의회의 승인을 식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에서 대법관 9명의 의견은 '위법'이 6명과 '합법' 3명으로 엇갈렸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가운데 새뮤얼 알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브랫 캐버노 등 3명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다.
미연방대법원 판결이후 기자회견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로이터통신, 연합뉴스
보수 우위의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정책에 손을 들어줬지만, 그의 집권 2기 최대 경제 및 외교 정책인 관세에서 오히려 최악의 패배를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판결이 나오는 시점에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조찬 회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판결에 대해 "수치스러운 것"(a disgrace)이라고 비난했다고 CNN 방송이 전했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호관세와, 이른바 '펜타닐 관세',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관세에 보복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재차 부과한 관세 등 IEEPA가 적용된 관세 행정명령에 적용된다.
따라서 트럼프 관세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인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미국에 관세를 납부해온 기업들이 대대적인 환급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 통신은 펜실베이니아대의 '펜-와튼 예산 모델'(PWBW)의 경제학자들을 인용해 이날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인한 환급 요구액이 1750억 달러(약 25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이날 대법원은 판결에서 이미 징수된 관세에 대한 환급 문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향후 대법원이 아닌 하급 법원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이며 또다른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소수의견을 낸 캐버노 대법관은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반환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한 뒤 "그 과정은 엉망진창(mess)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올해 초부터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대비해 미국의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미국 내 자회사들이 이미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관세 반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 판결에 따라 미국과 새롭게 무역합의를 체결한 한국 등 국가들의 향후 움직임도 주목된다.
한국의 경우 당장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미국내 후속 움직임, 다른 나라 정부의 대응 등을 봐가며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번 대법원 판결 직후 "정부는 연방대법원 판결 내용 및 미국 정부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