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계사, 30일 출간 예정
[비욘드포스트 이지율 기자] 시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으로 시와 함께 시의 길을 쉬지 않고 걸어온 노두식 시인은 올해로 등단 시력(詩歷) 30년을 맞게 되었다. 이미 우리 시의 제단에 바쳐진 여덟 권의 시집에 더해 그가 이번에 새로이 선보이는 시집 『가는 것은 낮은 자세로』 또한 ‘시간 여행자’의 유장한 여정과 성찰의 언어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귀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노두식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에서 ‘9’는 완전수가 아니라 ‘하나’가 모자란 숫자이다. 완전은커녕 부족한 수이자 결핍의 수이다. 십진법은 그렇게 우리를 수비학적 상상력으로 이끈다. ‘9’는 절정을 향해 끓어오르는 긴장과 열망의 숫자이며, 첨두아치를 향해 가파른 기울기를 견디어 내는 영원히 추락하지 않는 접선이다. 그런 점에서 시간 속에서 시간의 깊이를 재는 이번 시집은 시간의 분수령인 첨두아치를 향한 접선의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절대적 바탕이자 존재의 근거라는 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만등(萬燈)에 올라타 두드리고 때리고 던지고 퉁기며 살아간다. 산 자들은 산 자들대로 삶의 방식으로,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대로 죽음의 방식으로. 시간을 겪는 그 양상의 무한성에 존재의 비의(秘義)가 있다는 듯이.
시간의 보편성에 반하여 시간 여행자의 고유성을 노두식 시인에게 허여해야 한다면, 일흔다섯 편에 이르는 이번 시집의 세목들이 낱낱이 시간의 어떤 국면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마음의 비밀은 그 자체로 / 비밀스러운 존재의 부분을 이루”(「비밀에 대하여」)듯이 고유한 시간의 국면들을 통해 보편성의 지평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섬세하고 유장한 사유의 떨림이 번뜩이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함께 시간을 겪는 ‘시간의 존재’인 우리는 그가 보여 주는 시간의 깊이를 가늠하고 사유의 넓이를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고유한’ 시간을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여행자는 오늘도 걷는다. 마치 걷는 일이 자신의 본업이라도 되는 듯 그는 걷고 또 걷는다. 그가 걷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는 걷고 또 걷는다. 어쩌면 걸음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데 시간 여행자의 본성이 있다. 여기서도 시간의 넓이는 반복의 무한성에 연결되고, 깊이 또한 반복의 필연성에 접속한다. 시간 여행자에게 반복은 무한이기도 하며 때문에 필연적이기도 하다.
노두식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하여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면서도 인간 회복에 이르는 아름답고 건강한 시 의식을 견지해 오고 있다.”(김병호, 「실존의 감수성과 공명」)는 언급은 여전히 타당하다. 이번 시집 『가는 것은 낮은 자세로』가 보여 주는 대로 그가 여전히 시간의 깊이를 깨달은 시간 여행자로서 대긍정의 사유를 보여 주는 한 그에게서 ‘아름답고 건강한 시 의식’을 발견하는 것은 소당연(所當然)에 가깝다.
무한히 연장된 시간과 공간을 사유하기. 연결과 접속과 합일을 긍정하기. 그리하여 ‘시간의 만등(萬燈)’에 올라타 산 자들의 시공과 죽은 자들의 시공을 합치고 뭉치고 주무르고 휘젓기. 노두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와 같이 아주 특별한 시간 여행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시인의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그가 새롭게 펼칠 또 다른 여행담을 기다리는 기쁨을 누려도 좋을 것이다.
news@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