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은 같은 업종 기업들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유통 따위에 대해 협정을 맺는다는 경제.법률 용어입니다. 근래에는 중남미 일부 나라의 마약 조직을 지칭하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커졌습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현 정부가 들어서고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폭력) 카르텔’ 또 ‘킬러문항’을 거론하며 ‘사교육 카르텔’, 그리고 의대 정원 문제로 의료계를 ‘직역 카르텔’로 비난하면서 ‘카르텔’이라는 프레임을 부각시켰기 때문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극우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둘러봤습니다.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말과 글을 편견을 버리고 제대로 본 것입니다.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의 물리적 실체에 놀랐고 인터넷에 뿌리깊게 퍼져 있는 폭력을 옹호하는 세력의 규모와 극단성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어떤 ‘카르텔’보다 견고하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영영 화해하지 못하고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내 주변에도 혹시 이런 사람이 있나, 한번 떠올려 보았습니다. 단톡방에서 말을 아끼던 친구와 지인, 가끔 만나면 괜히 정치인 욕하고 북한, 중국 비난에 열올리는 선배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아끼고 존경하던 많은 사람이 불현듯 두려워졌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 보면 ‘극우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은 또 반대 쪽 사람들 또한 ‘다른’ 카르텔로 여길 것이 분명합니다. 계엄 탄핵 폭동 정국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서로 간에 그어져 있다고 생각하던 여러 층위의 벽들을 확인했습니다. 그 중 어떤 건 허구였고 어떤 것은 과장 또는 축소됐으며 또 다른 어떤 것은 상상과 희망의 영역에 속하는 창작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카르텔’ 안의 것은 알지만 반대편의 사정은 점점 더 모르게 되고 급기야 미워하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화해하자는 말은 때로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따로 떨어져 살 수 없고 그래선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면 ‘카르텔’이라는 용어가 특정 세력의 공격무기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부터 자제해야 합니다.
경제 법률 외교부문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될 말이 엉뚱하게 적용되면서 적대적 감정의 확산으로 번지고 대한민국은 더 큰 혼돈에 빠졌습니다. 가뜩이나 세대 성별 계층 집단으로 나뉘어 갈등의 골이 깊은데 이 난폭한 카르텔의 파도를 이길 힘은 결국 분열에 눈 감고 있는 정치권이 아니라 공감으로 연대하는 시민들의 양식에서 나와야 길을 찾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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