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메뉴

[신형범의 千글자]...씨앗은 기적이다

기사입력 : 2025-03-07 08:35

[신형범의 千글자]...씨앗은 기적이다
핵전쟁이나 기상이변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재난으로 식물자원이 고갈될 경우를 대비해 식물종자를 모아 보관하는 영구저장 시설이 세계에 두 곳 있습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 섬의 ‘국제 종자저장고’와 대한민국 경북 봉화군의 ‘종자보관소’입니다.

‘종말의 날 저장고’ 또는 ‘노아의 방주’라고도 불리는 스발바르 저장고는 주로 식량작물의 종자를 보관하고 경북 봉화의 보관소는 야생식물의 씨앗을 보관합니다. 야생식물은 식량작물보다 종류가 많고 향후 식량과 약물, 산업자원 등으로 활용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시드볼트(Seed Vault)’라고 불리는 봉화군 보관소의 경우 지하 46m 깊이에 길이 127m의 터널 두 곳을 뚫어 진도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으며 365일 24시간 영하 20도, 습도 40%를 유지합니다. 2022년 기준 약 5500종 20만 점의 씨앗이 보관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뜻밖의 재앙으로 지구의 식물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보관소 두 곳에 있는 씨앗만 있다면 다시 자연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잘것없이 작고 하찮지만 씨앗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비와 햇볕을 받아 싹을 틔우는 순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현실에선 따로 씨앗을 보관하지 않아도 매년 봄이면 그 기적 같은 일을 목격합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그 놀라운 광경을 김소연 시인은 ‘봄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라고 풀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시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단어나 문학적 표현 하나 없이 일상언어의 조합만으로 읽는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나는 백 번 다시 태어나도 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지난 주까지 강추위가 연일 계속될 때는 봄이 아득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날이 푹하더니 어제는 드디어 ‘기적’이 시작되는 걸 봤습니다. 나뭇가지에 연둣빛 여린 싹이 점을 찍기 시작하고 언 땅을 헤집고 보드라운 싹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시인이 그냥 ‘봄은 기적이다’라고 했다면 감동이 덜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이라고 하니까 마치 우리도 그 기적에 힘을 보탠 것 같은 뿌듯함이 드는 겁니다. 자연은 우리가 아는 기적들을 잊지 않고 펼쳐 놓았습니다. 사실 사람은 어린 싹을 위해 특별하게 뭘 하지는 않았지만 감탄은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의 땅에서 침묵하던 꽃과 식물이 살아 돌아오는 건 거듭되는 고통 속에 있는 인간에게는 희망으로 비쳐집니다. 이제 각자의 기적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됐습니다. 출발하시지요, 각자가 꿈꾸는 기적을 향해. ^^*

sglee640@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리스트바로가기

인기 기사

글로벌대학

글로벌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