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비욘드포스트 송인호 기자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정치가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으로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들었다. 늙어 아내가 없는 남자, 늙어 남편이 없는 여자, 부모 없는 아이, 늙어 자식이 없는 사람이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삶을 먼저 살피라는 가르침이다. 정치의 가치는 가장 외로운 사람 곁에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가에서 드러난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늘의 환과고독은 옛 문헌 속의 대상과 많이 다르다. 홀로 병을 견디는 어르신, 간병비 앞에서 막막해진 가족,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익숙한 집을 떠나야 하는 시민이 그 자리에 있다. 수명이 길어졌지만 아픈 시간을 함께 건널 손길까지 충분해진 것은 아니다.
민선 9기 신상진 성남시장이 추진하는 ‘성남형 내집 생애말기 케어’는 이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복지행정으로 가져온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집에서 의료와 돌봄을 받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신상진표 복지가 시민의 일상생활과 함께 생의 마지막 존엄까지 책임의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다.
‘내집 생애말기 케어 사업’ 추진을 본격화한 가운데 신상진 성남시장이 대상 어르신 자택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살피고 격려했다./성남시
◇맹자의 질문에 신상진표 돌봄으로 답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출생과 교육, 취업과 주거를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논의한다. 그러나 마지막 시간을 어디에서, 누구와 보낼 것인지는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생애의 출발을 지원하는 공동체라면 그 끝을 지키는 책임도 고민해야 한다.
익숙한 방, 손때 묻은 식탁,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은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기억이다. 치료와 돌봄이 필요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억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면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생긴다.
신상진표 내집 생애말기 케어의 의미는 바로 그 간극을 메우려는데 있다. 시민이 원하고 의료적으로 가능한 경우, 살아온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공공이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복지가 생명을 연장하는 지원에서 삶의 방식과 마무리까지 존중하는 체계로 나아가는 변화다.
물론 집에서의 임종이 모든 사람에게 최선일 수는 없다. 병원 치료나 전문 호스피스가 필요한 시민에게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핵심은 장소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가난과 간병 공백 때문에 원하는 돌봄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서 그렇다.
따라서 이 정책은 단일 노인복지사업의 범주를 넘어선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자, 복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도라 할 만하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지난달 30일 시청 제1회의실에서 성남시 내집 생애말기 케어 추진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성남시
◇시민 호응의 예감, 돌봄이 현관문을 넘는다
시민들의 호응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 정책이 건드리는 문제는 어느 특별한 가정의 사정이 아니다. 부모의 노쇠를 지켜본 자녀, 병원과 요양시설 사이에서 고민한 가족, 홀로 늙어갈 내일을 생각하는 시민 모두의 현실이다.
돌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문제다. 오늘 건강한 시민도 내일은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신상진표 케어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시민은 ‘아파도 이 도시가 나를 놓지 않겠구나’라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 신뢰가 정책에 대한 공감을 넓힐 토대다.
신 시장이 구상하는 공공형 왕진과 보건·의료·복지의 연계는 이를 실현할 중요한 출발점이다. 의사가 집을 찾고 방문간호와 요양이 이어지며 부족한 간병과 임종기 지원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동이 어려운 시민에게 병원과 행정기관을 직접 찾아오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높은 문턱이다. 필요한 서비스가 시민의 현관문을 넘어 삶의 현장으로 찾아갈 때, 복지는 비로소 일상에서 체감된다. 서류 속 지원이 돌봄의 손길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시민의 호응은 말로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연락했을 때 응답이 오고 도움이 필요한 시간에 사람이 도착해야 한다.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사업의 이름보다 통증이 심한 밤에도 기댈 수 있는 확실한 연결이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지난 8월 24일 일본 나고야에 있는 아이코엔 노인보건시설을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성남시
◇연결과 조화로 이어지는 성남의 실험을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신 시장이 일본 나고야에서 살핀 재택의료와 지역 돌봄의 경험 역시 연결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읽어야 한다. 의료기관과 방문인력,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좋은 시설을 갖추는 일과 끊김 없는 돌봄을 만드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신상진표 모델의 성패도 여기에 달렸다. 왕진 의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야간과 휴일에는 누가 대응하는가. 상태가 악화되면 병원으로 어떻게 연결하는가. 지친 가족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지원은 있는가. 이런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 있어야 한다.
특히 ‘내 집에서 돌봄’이 가족에게 간병을 더 맡기는 결과가 돼서는 안된다. 집이라는 장소를 지키려면 그 안에서 돌보는 사람의 삶도 함께 지켜야 한다. 돌봄 제공자의 휴식과 건강까지 고려해야 정책의 약속이 온전해진다.
시범사업 약 100명은 출발점이다. 몇 명을 지원했는지와 함께 통증과 불안이 얼마나 줄었는지, 가족 부담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민의 선택이 실제로 존중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현장의 어려움도 드러내고 개선해야 한다.
그 성과가 쌓인다면 성남의 실험은 대한민국의 생애말기 돌봄 기준을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지방정부가 먼저 길을 열고 중앙정부가 건강보험과 장기요양, 인력과 재정 제도를 연결해야 한다. 한 도시의 의지가 전국의 시민에게 지속 가능한 권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성남 내집 안심약사 방문 업무협약식 모습. /성남시
◇마지막 한 사람을 지키는 성남의 품격은 명품이다
복지는 비용인 동시에 공동체의 내일을 지키는 투자다. 필요한 돌봄을 제때 제공하면 시민의 고통과 가족의 소진을 줄일 수 있다. 효과를 면밀히 살피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그 투자를 오래 이어가기 위한 책임이다.
신상진표 내집 생애말기 케어가 힘을 얻으려면 시민 체감정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부서가 달라 지원이 끊기고 신청 절차가 복잡해 필요한 사람이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의료와 복지가 시민 한 사람을 함께 바라볼 때 정책의 이름에 실질이 채워진다.
판교와 분당으로 상징되는 성남의 성장도 마지막 순간을 앞둔 시민에게 안심을 줄 수 있을 때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첨단산업의 성과가 삶의 온기로 이어지고 도시의 발전이 가장 의지할 곳 없는 사람에게까지 닿아야 한다.
맹자의 환과고독은 오늘의 성남에 묻는다. 가족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시민도 존엄한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가. 신상진 시장의 도전은 이 물음에 그 자신만의 정책으로 답하려는 시도다. 시민 호응을 기대하는 이유도,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발전시키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꾸준한 실행이다. 왕진이 현관문을 넘고 간병의 빈틈을 공공이 메우며 마지막 순간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있어야 한다. 가족이 있는 시민에게는 함께할 여유를, 가족이 없는 시민에게는 곁을 지킬 손길을 제공해야 한다.
누군가 삶의 마지막 날 익숙한 방에서 두려움을 덜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공동체가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 환과고독을 품는 정책이다. 신상진표 케어가 그 약속을 실현한다면 성남은 대한민국에 복지의 새 지평을 보여줄 수 있다.
잘 사는 도시에서 마지막까지 사람을 지켜주는 도시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성남의 도전에서 확인해야 할 미래다.
※통찰추호(洞察秋毫)는 아주 작은 부분이나 미묘한 변화까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