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이종균 기자] 상가 임대차계약서에 '차임 연체 시 즉시 명도' 특약을 넣었다고 해도 임차인이 버틸 경우 임대인이 곧바로 점포를 비우게 할 수는 없다. 계약서의 특약과 실제 강제집행에 필요한 집행권원은 법적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8일 법도종합법률사무소에 따르면 임대차계약서에 명도 관련 특약이 있더라도 해당 조항만으로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는 없다. 특약은 일정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계약 해지를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임차인의 점유를 강제로 이전할 수 있는 집행권원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대차계약서의 명도 특약은 당사자 사이의 약정에 불과해 법원의 집행문을 받을 수 있는 집행권원이 아니다"라며 "임차인이 자진해서 나가지 않는다면 확정판결이나 그와 같은 효력을 가진 문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
실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계약서에 '연체 시 즉시 명도한다'는 문구가 있어도 실제 퇴거까지는 별도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대인이 계약서만을 근거로 임차인의 출입을 막거나 점포 안 물품을 임의로 옮기는 방식으로 점유를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대인이 명도를 강제로 집행하려면 통상 명도소송 등을 통해 판결을 받아야 한다. 반면 계약 체결 단계에서 명도 조건을 제소전화해 조서에 담아두면 분쟁 발생 시 별도의 본안소송을 거치지 않고 집행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엄 변호사의 설명이다.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은 확정판결이나 가집행선고가 있는 판결, 화해조서 등 집행권원을 기초로 이뤄진다. 당사자끼리 작성한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서는 그 자체로 강제집행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상가 임대차에서는 특약 내용 자체의 효력도 따져봐야 한다. 엄 변호사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차임 연체에 관한 법정 기준보다 임차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특약은 효력이 제한될 수 있어 계약서에 적힌 문구만으로 해지와 명도가 당연히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소전화해를 활용할 때도 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연체를 이유로 인도 의무가 발생하도록 조항을 작성했다면 몇 기의 차임이 연체돼야 하는지 등을 명확히 하고, 실제 집행 단계에서 연체 사실을 입금 내역 등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서와 제소전화해 조서의 해지 기준이나 명도 조건이 서로 다르게 작성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같은 임대차관계를 두고 기준이 달라지면 집행 단계에서 해석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증만 받아두면 명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용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엄 변호사는 금전 지급과 부동산 인도에 관한 공정증서의 집행 요건이 서로 다른 만큼, 계약 초기부터 향후 명도 분쟁을 대비하려는 경우 제소전화해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약을 이유로 임대인이 직접 점유를 회수하는 방식도 주의해야 한다. 임차인이 자진해서 점포를 넘겨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문을 잠그거나 물건을 반출하는 행위가 별도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엄 변호사는 "계약서 특약은 임차인과 약속한 내용을 확인하는 문서이고 제소전화해 조서는 강제집행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연체 시 명도 조항의 실제 집행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계약 초기부터 화해조항의 내용과 집행 요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