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 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놓은 게지
이호준 시인의 《11월》이라는 시입니다. 이번 주만 지나면 11월도 끝입니다. 11월은 특징이 없는 달입니다. 기념일도 없고 국경일도 없고 그러니 공짜로 노는 날이 없습니다. 노벰버는 ‘No’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다,는 실없는 농담에 헛웃음이 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지도 못하는 끝에서 두 번째 달이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날도 없습니다. 굳이 찾자면 막대기 모양 과자이름을 붙인 날이 과자회사의 마케팅으로 떠들썩했는데 이것도 예전만 못합니다. 그나마 매스컴이 호들갑스럽게 구는 바람에 더 긴장하게 되는 대입수능일 정도일까요. 그래서 시인은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11월을 골랐나 봅니다.
시를 읽으면서 영화 《일 포스티노》가 떠오릅니다. 칠레의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소년 마리오의 우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인처럼 멋진 시로 여자나 꼬셔볼까 하는 마리오에게 어느 날 파블로는 말합니다. “시는 쓴 사람 게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 것이라네” “시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가슴을 활짝 열고 시의 고동소리를 들어야 해” “해변을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게 그러면 메타포가 나타난다네”
메타포를 잘 알지 못 해도 11월에는 누구든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의도 빌딩숲 속 남자도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11월이라고 적힌 달력을 다시 봅니다. 이번 주만 지나면 2024년도 한 장 남습니다. ‘당신과 나 똑 같은 키로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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