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한복판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는 약 2.3km,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 10차선 대로에는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려면 가까운 지하도나 육교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5년부터 횡단보도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지금은 같은 구간에 횡단보도가 20개 가까이 됩니다. 도로를 건너기 위해 사람들은 더 이상 지하도로 내려가거나 힘들게 육교를 오르지 않습니다.
나이 먹은 세대엔 익숙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게 뭐지?’ 할 수도 있는 시설물 중 하나가 바로 육교입니다. 내가 처음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1970년대 중반, 서울시내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많지 않았습니다. 도로는 단지 자동차가 질주하는 용도였고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가급적 최소화했기 때문입니다. 육교는 개발에서 소외된 인간, 특히 장애인과 노약자 등 소수자를 배제한 채 달려온 ‘개발광풍’의 대표적 단면이었습니다.
그러다 2천 년대 들어 전국의 도로에서 육교가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급격하게 그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육교가 사라진 이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인본주의의 회복입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보행권이 존중받는 사회로 올라선 것입니다. 다음은 안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교 주변에서 오히려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통계적 결과가 근거입니다. 도시미관을 해치고 낡아서 관리가 어려운 것도 육교를 철거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또 교통정책의 변화도 한 몫 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자동차 중심 문화에서 사람을 더 우위에 놓기 시작했고 자동차로 도심을 다니는 사람을 가급적 불편하게 만들어 도심을 운행하는 자동차 수를 줄이려는 도시정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명을 다했거나 안전상 위험한 육교는 다시 세울지, 횡단보도를 설치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경우 대다수 지자체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육교를 버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습니다.
요즘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낡은 육교를 화곡동 한 도로에서 앵글에 담았습니다. 학생처럼 보이는데 몸통 만한 가방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육교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 볼 수 있게 적힌 ‘계단주의’라는 경고문을 보고 든 생각은 ‘참 공무원스럽다’인데 편견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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