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정작 외국에선 못 알아듣는 콩글리시가 있는데 ‘아파트’도 그 중 하나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아파트 형태의 주택을 영국에선 플랫(Flat), 미국에선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아파트’의 어원이 됐을 아파트먼트(Apartment)도 있긴 한데 일정한 보증금과 월세를 내는 렌트 개념의 3~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말합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아파트’라는 한국식 공동주택 이름을 낯설어 합니다. 아마 아파트먼트를 일본식 축어법에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가 ‘아파트’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외국인과 대화할 때 ‘아파트’라는 콩글리시를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짐작하겠지만 갑자기 ‘아파트’ 얘기를 꺼낸 건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아파트(APT)》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들어보면 브루노 마스가 ‘아파트 아파트’를 정확한 발음으로 반복하는 게 들립니다. 뿐만 아니라 노래를 따라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발음’으로 ‘아파트(apateu)’라고 하는 동영상도 퍼지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아파트’를 제대로 발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 끝에는 ‘으’ 발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빗, 엘리자벳, 유튭’이라고 하지 ‘데이비드, 엘리자베스, 유튜브’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브루노 마스를 비롯해 이 노래를 따라하는 외국인들은 아파’트’라고 정확하게 발음합니다.
그런데 노래는 진짜 아파트 얘기가 아닙니다. ‘아파트’는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하는 게임의 이름입니다. 《아파트(APT)》에 대해 《한글의 탄생》 《K-Pop 원론》의 저자이며 오랫동안 K-팝을 연구한 노마 히데키 전 도쿄대 교수는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고 서양과 한국의 게임구호가 충돌하면서 두 언어가 주종관계 없이 말 자체가 갖고 있는 ‘말성’을 극대화했다”고 평가합니다.
글로벌한 인기에 덕에 예상치 못한 반사이익을 보는 곳도 있습니다. 로제가 소주와 맥주를 섞어 ‘소맥’ 만드는 법을 설명한 패션전문지 《보그》의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자 한국 주류업체들의 주가가 뛰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제목 외엔 아무 공통점도 없는 1982년에 발표한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도 소환돼 덩달아 인기를 끌면서 ‘42년 만에 재건축 축하’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로제,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APT)》에는 한국의 술문화와 게임 그리고 한국어가 녹아 있습니다. 또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공감을 얻습니다. 영화 《기생충》, 소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봅니다. 노래 한 곡으로 세계가 한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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