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단체와 일부 보수 시민단체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고 학교와 공공도서관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작품 내용은 알지도 못하면서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서관에 비치하는 건 옳지 않다”며 “극단적이고 폭력적, 외설적인 묘사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이라고 근거를 들었습니다.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학교나 어른들에게 성교육을 단 한번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콘돔 사용법, 월경주기와 가임기 계산, 나아가 성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해선 안 되는 게 무엇인지, 타인의 삶도 존엄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교육받은 적 없습니다.
그저 학교와 사회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몸은 탐닉의 대상이 아니다, 성을 드러내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숨기고 감추고 누르고 참아라, 나중에 다 알게 된다. 그럴수록 성에 대한 관념은 말초적으로 진화했고 가부장적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채 성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숨기고 감추고 억누른다고 모르는 게 아닙니다. 특히 요즘처럼 매체가 개방된 사회에서는. 부모단체나 보수단체의 논리대로라면 단군신화, 그리스.로마신화 심지어 성경도 금서여야 합니다. 곰을 등장시켜 수간을 암시하고 서양신화는 온갖 불륜과 패륜투성이고 종교서 또한 부적절한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학을 포함해 모든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평가할 때 어떤 한 가지 특정 기준만 적용하는 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특히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예술입니다. 독자 개인마다 각각의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당연합니다. 일부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부정한다면 그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와 깊은 뜻을 놓치게 됩니다.
《채식주의자》만 하더라도 단순히 성과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규범, 개인의 자유와 억압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특정 묘사만으로 ‘유해물’ 취급하는 건 중요한 예술적 성취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긴 합니다. 어른이 할 일은 나쁜 책을 못 읽게 함으로써 고민할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니라 좋은 책과 비교하게 함으로써 나쁜 책을 골라내는 안목을 키워주는 일입니다.
또 도서관은 시민들이 다양한 책을 읽고 가치판단을 하는 역량을 키우는 공간입니다. 불편한 책을 섣불리 폐기하기보다는 그 책이 왜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 만드는 게 21세기의 도서관 수준에 맞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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